Pre-med 2학년 미국 의대와 국제 의대의 갈림길에 서다(ft. 간호대 편입)

2022. 4. 6. 23:21유학이야기: 미국 대학과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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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면서부터
친했던 친구들도 서서히 멀어지고
한 두명의 친한 친구들과 주로 교류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주변에는 그 과에 혼자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Pre-med, nurse, optical med, biology, dental, art, etc...

다들 혼자 듣는 수업과 스케줄을 어떻게 감당하는 건지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실은 과목 공부를 하면서 과제를 하고
2~3주마다 시험을 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만 하면야 편했겠지만

영어 공부, 봉사활동, 진로 알아보기, 리더십 관련 활동, 외국친구들과 지내기, 교수님과 이야기 나누기, 책 읽기, 배경지식&문화체험 쌓기 등등
나에겐 해야할 숙제가 너무나 많았고

이 가운데에서도 이 길이 맞는지
현실적으로 고려하며 차선책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영주권 없는 유학생이 미국 의대를 들어가기란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란 걸
Pre-med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만날 때는
하염없는 착잡함의 기운이 감돌곤 했다.

각자 사정과 살아온 곳은 달랐지만
그 어려움은 언제나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5명은
네 가지 다른 선택을 했다.

한 명은, 조기 졸업후 과학 관련 대학원 진학을 결정.
한 명은, 탄탄한 성적 관리와 연구 활동으로
명문대 생물학과로 3학년 편입 후 해당 학교의 의대 진출을 목표.
한 명은, 휴학 후 어렵게 영주권을 얻어 미국 군대를 가기로 결정.
한 명은, 간호대로 먼저 가 병원 경험을 하며
영주권을 목표로 졸업하기로 결정.
한 명은, 제휴 맺은 국제 의대를 들어가 의사 자격증 취득 후 미국 병원 취업을 목표.

모두가 같은 목표를 두고 있었지만
선택은 이렇게 달랐고

연락을 하면 요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지만
아직은 한창 바쁠 때라
멀리서 응원만 하고 있다.

국제 의대냐 VS 미국 의대냐


항간엔
미국 병원의 25%가 외국 의대 출신이란 얘기가 있었다.

국제 의대는

외국 의대와 같은 개념이지만
주로 캐리비안(중앙아메리카)지역에 있는
제 3지대의 의대에 다양한 인종의 출신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는 의대라고 할 수 있다.

international medcial school
예과부터 총 8년 공부하는 길과
미국 대학에서 4년제 과학 관련 과에서

(꼭 이공계가 아니어도 됨)
필수 전공과목 이수 후(biology,chemistry, biochem, organic chem, microbiology 등)
의대로 바로 지원해
4년만 본과 의대 공부를 하는 길이 있다.

그 4년은 말그대로 휴양지 같은 섬에서
대학 캠퍼스만 있는 식이라
낭만은 낭만대로 즐길 수 있고
무료함은 무료함대로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다ㅎㅎ

그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락을 할 때마다 시험 준비하느라
빡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서 연락하는 거 방해되는 거 아닌지 물어봤는데
그 정도야 가능하다고ㅎㅎ

원랜 나도 이 곳을 가려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살다보니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또 주변 병원들을 보다보니
미국에서 쭉 지내며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미국 의대를 못가더라도
현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시끌벅적한 도심 분위기도 좋았고
살면서 미국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알아가는 재미도 한 몫을 했다.

캐리비안 의대라면
더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만나며
동아리 활동도 하고
쉴 때는 함께 맑은 바다와 자연을 볼 수도 있었다.


중간에는 제휴가 된 영국 의대 쪽으로 교환 학생을 갈 수도 있고
3~4학년 실습은 미국 병원에서 진행되기에
사실 섬나라에서 공부하는 기간이
영원할 것처럼은 안 느껴도 된다ㅎㅎ

한편으로는,
혹여나 잘 졸업을 하더라도
나중에 미국 의대와는 다르게
제 3국의 의대이기에
취업에 경쟁력이 떨어질까봐 걱정이 됐다.

그러다 해당 연도에 로테이션 지원 후
취업이 안되면
비자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그냥 돌아와야 할 수도 있고
국내에 와서 지원서를 내야하는 리스크를 떠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학벌 높은 떠돌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기에
불안한 헛걸음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미국 대학과는 달리
의대 졸업장 자체로는 힘이 없다 할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졸업 자체로만은
학교의 인지도가 생소한 면이 있어
자칫하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의대의 졸업장은 마치
박물관에 가면 가치가 높아 전시가 되어있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는
문화재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설명회를 가보면
또 그 문화재의 판타지에 빠지게 된다.

한 번은 대학 근처에 설명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신청해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해당 학교를 졸업해 미국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학교 출신 사람들이 와서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얼마나 어렵고 어느정도 힘든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그 후엔 찾아온 사람들과 상담도 해주었는데
따로 한국인 담당자의 연락처도 받았었다.

그 사람들도 희박하고 어려운 가능성을 뚫고 왔기에
'후, 쉽지 않지만 충분히 할 수 있어'
의 분위기가 주로 흘렀던 것 같다.

그래서 딱
"운도 따라야하고
하기 나름에 따라 편차가 크다"

고 보여졌다.

여기도 당연히 미국 의대와 같이
졸업을 하면
USMLE라는
미국 의사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데
합격률이 나름 90%이상이라 괜찮고
설명회에서 취업률도 괜찮았어서
한 번 해볼만한 길이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의 한국인 담당자 분이
국내의보건복지부 승인을 기다려
한국 의사 자격 시험도 가능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 승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물론, 의사 자격증을 따더라도
취업이나 병원 선택에 있어서는
미국 의대나 한국 의대 졸업생 친구들과 경쟁해야하고


특히,
미국에선 과 선택에 있어
외과는 많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의대는

외국인의 비중이 50% 내외이며 졸업생의 80%정도가 취업한 국제의대와 달리
유학생의 입학이 소수점에 불과한 곳이다.

외국인의 입학이
현저히 어려운 편이라 할 수 있지만
들어가면 타국 의대보다 취업은
훨씬 나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의대 입학 경쟁률은 3:1정도.

의대 진학 희망자의 수가 유별나게 쏠려있지도 않으며
대학 숫자와 정원이 많아 뽑는 인원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가 의대가 10개 정도 인가?에 비해
미국은 땅덩이도 크고 대학도 병원도 비교도 안되게 많기에..ㅎㅎ

합격률이 40%였나?

주로 처음엔 성적을 보고
그 다음엔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중심으로
그 외의 리더십과 의사로서의 자질을 드러낼 수 있는 활동들을 보는 편이다.

상위권 유명 대학 GPA합격 평균은
3.7~4.0으로
한 학기로 치면 올A에 가끔가다 A- 두 개, B 한 개 정도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중상위권, 중위권, 하위권까지보면
3.2~3.7
그래도 수능 의대 입시보단
확실히 널널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매 학기 그런 학점을 받는 게
한 번에 100점 맞는 거보다 어려울 순 있다.

또, 낮은 성적이라도
그 외 활동에 대해서 훨씬 눈에 띄고
추천서를 잘받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독특하다면

높은 성적에 밋밋한 학생이 떨어지고
낮은 성적의 학생들이 뽑히는 경우도 많다.

그니까 유학생도
잘 안뽑힌다는 통계가 있을 뿐이지,
정말 빡세게 의대 준비만 하면 인간이 할 일은
아니다..



나로써도 저 모든 길을 선택할 여지가 있었지만
방향이, 그리고 그때의 상황이 그렇게 맞아떨어져
간호대 편입을 선택했다.

본토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확실히 배수진을 치고 들어간
간호대는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안보이는 친구들도 있었고
한 학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때부터 였다.
본과에 들어가 12시간씩 실습을 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정말 빠듯했다.

그럼에도 나름 현지친구들에 발맞춰
공부하고 실습하고 생활하는 게
뿌듯했다.

중간중간 떨어진 미국 애들이 있었고
나는 다음 학년에 안정적으로 들어왔다는 걸 볼 때 느껴지는 자부심도 있었다.

초반에 친했던 미국 친구들과도
다음 수업에서 여전히 같이 옆자리에 앉는 게
기분 좋았다.

때론, 함께 차타고 아침 일찍 실습하러 가서
점심에는 한국 음식을 해서 나눠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 즐거움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매일매일 설레게 했고
한편으론, 그런 삶을 지켜내느라
본래의 실력이나 능력에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본과 두 번째 학기에서는
밖에서만 보던
대형 병원 실습을 들어가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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